우리의 부모이며 친구를 존중하자.

우리는 그들과 다르지 않은 존재이며 거기에 제약을 받아서 대지에서 숨을 쉰다. 그들이 아프지 않도록 고민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 (물론 나라는 계산기의 한계와 규정된 이익의 밑에서) (도덕만큼 우리를 편안하게 가두며 다음으로 인도하는 배가 있을까? 재화와 명예라는 우리의 음식이 아닌 것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말라.

무를 택하는 자는 존중한다. 내가 하는 일은 의미가 없는 일인가? 그 안의 신경물질의 편안함과 아님은 물질이며 관측되는 것이며 차이가 있다. 자신의 제약은 자신을 단련시키며 너를 편안함으로 인도한다. 자신의 보호본능과 대화하라. 그가 너무 힘들지 않게 응원해주고 서로의 영역을 인지하라. 나는 삼겹살을 먹는다. 치킨을 먹는다.

생명을 죽이지 않는 자를 존중한다. 그러나 자신의 영역을 일정이상으로 강제로 넓히지는 마라. 그것은 서로의 편안함을 위협한다. 우리는 동물이며 조금의 미래만 예측할 수 있다. 나는 감히 그대들의 생각을 추측하나 결코 확신할 수 없다. 나는 우솝을 좋아한다. 그가 강자라서가 아니다. 그가 자신의 공포와 싸우는 자이기 때문이다.

확률을 조금 더 높일 수 있을 뿐. 그대들의 아침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 제약을 편안함이라고 느껴라. 나는 그대들을 심판할 수 없으며 힘을 가질 수 없다. 옆의 있는 자가 무슨 삶을 선택했는지 감히 어떻게 인지하겠는가?

자유의지란 존재하는가? 그것이 의미가 있는가?

확실한 건 불안하다는 것이다.

나는 싸웠고 자신의 역량의 한계를 시험했다. 그것으로 조소를 사더라도 공포에 비해서는 부드러운 파도일지니.

영원한 삶은 무엇인가? 우리는 물질이 결국 0으로 향하는 것을 안다. 그것이 어떤 방향이건. 우리의 의식은 그렇게 향한다. 나는 끝 이후를 알고 싶지 않다.

생명의 의도는 미래로 향하는 것.

우리의 의식은 잠시 그 배를 타고 여행을 한다.

배에서 내리건 내리지 않건 어차피 도달한 곳은 같다.

현대의 법은 모순투성이이나 결코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선대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한명의 공포심이 이 축복된 환경을 부수지 않는 구조에 거스름돈을 던지고 조금씩 보완한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외로움은 그대의 몸 속에 있다. 그 제약을 인지하라. 그것을 부수건 부수지 않건 존재했다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